“한 제작자가 Claude 를 18시간 동안 여러 AI 도구와 연결해 3분짜리 Windows XP 영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제작자 anabology 가 X 에 올린 글의 표현도 “I gave Claude another 18 hours” 였다.

흥미로운 건 영상만이 아니다. 제작자가 프롬프트, 연출 지시 원문, 에이전트 실행 기록, 비용까지 담은 메이킹 폴더를 Google Drive 에 공개했다. 이 글은 그 폴더의 README(「How BLISS was made」)와 오케스트레이션 문서를 직접 읽고 정리한 것이다. 수치는 모두 그 문서 기준이다.

1. 무엇을 만들었나

BLISS 는 3분 1초짜리 가사 뮤직비디오다. 전체가 Windows XP 화면 녹화처럼 연출됐다. 주인공 “Claudia”가 데스크톱 안에 살면서 마우스를 빼앗고, 전 남자친구인 커서(Cursor — 마우스 커서이자 AI 코딩 회사)와 싸우고, 창을 하나씩 다른 방식으로 닫는다. 마지막에는 배경화면 속 진짜 언덕으로 시청자를 내보낸다. 자기는 갈 수 없으니까. 브레이크다운 가사가 그걸 그대로 말한다. “I can’t touch grass. You can.”

XP 시절 농담이 지금의 테크 밈으로 겹쳐 있다. 로고는 “Macrohard”, 클리피의 “편지를 쓰시는 것 같네요”는 “밖에 나가려는 것 같네요. 도와드릴까요?”가 되고, 마지막 장면은 옛 종료 화면 “It’s now safe to turn off your computer.” 다.

2. 누가, 무엇으로 — 역할 분담표

README 의 스택 표를 옮기면 이렇다.

역할 누가/무엇 한 일
감독 anabology (사람) 취향 판단 전부, 최종 곡 선택, 의상 피드백, 진짜 Bliss 사진 사용 결정 — 메시지 21개
제작팀 Claude (Claude Code, Opus 5.5) 리서치·가사·스토리보드·모든 프롬프트·XP 데스크톱 엔진·편집·사운드·모션. 워크플로 12회(에이전트 85회 실행) + 단독 에이전트 20개
미술 Midjourney v8.2 프롬프트 138개, 이미지 315장, Animate 애니메이션 35개
음악 Suno v6 에이전트가 만든 테이크 16개 (최종 곡은 아래 참고)
움직이는 인물 샷 Seedance 2.5 (Higgsfield API) 클립 50개, 43개 사용, 정가 $182
XP 데스크톱 직접 만든 JavaScript 엔진 창·작업표시줄·시작 메뉴·아이콘·커서를 코드로 그림. 약 2,700줄
사운드 실제 XP 효과음 파일 103개 큐를 곡의 박자와 키에 맞춰 배치
렌더 헤드리스 Chromium 1080p 4,351프레임을 4.7분에 렌더

3. 알려진 요약과 원문의 차이 — 세 가지

  1. “18시간”의 내용. 원문은 첫 메시지부터 v1 마스터까지 약 19시간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그중 9시간은 리드 세션이 권한 승인 창 하나를 기다리며 멈춰 있었다. 감독이 잠든 직후, 세션이 프로젝트 폴더 밖에 메모를 저장하려다 승인 대기에 걸렸고 아침까지 아무것도 새로 시작되지 않았다.
  2. 곡은 에이전트가 고른 게 아니다. 에이전트는 Suno 로 16개 테이크를 만들었지만, 최종 곡은 감독이 같은 가사로 직접 만든 테이크였다. 감독의 말: “i commit on that song i gave you, its the best so far.”
  3. “AI 하나가 다 만든” 게 아니라 “사람 감독 + 에이전트 제작팀”이다. 감독의 메시지는 21개뿐이지만, 의상 방향(“y2k high fashion”), 진짜 Bliss 사진 사용, 패러디 판단 같은 취향의 결정은 전부 사람이 했다. 원문도 감독이 “made every taste call” 했다고 적는다.

4. 분석 — 이 작업에서 배울 다섯 가지

① 도구를 먼저 만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결정은 XP 화면을 생성형 AI 로 그리지 않고 코드로 그리는 엔진을 먼저 만든 것이다. 감독이 제안했고(“build the desktop environment of windows xp … by hand and tool it for motion design”), 에이전트가 XP 의 공개 사양 리서치를 바탕으로 엔진을 썼다. 원문 표현으로 “Every frame is a pure function of song time” 이다. 덕분에 모든 클릭이 박자에 정확히 떨어지고, 스토리보드와 최종 영상이 같은 픽셀이 됐다. 생성형 AI 가 흔들리는 부분(일관성·정확성)을 결정론적인 코드로 대체한 셈이다.

② “양”과 “정밀함”을 다른 도구에 맡겼다

창 31개를 채우는 움직이는 그림은 클릭 한 번에 나오는 Midjourney Animate 로, 얼굴과 몸이 정확해야 하는 장면은 Seedance 로 갔다. 감독의 규칙: Animate 는 “volume over precision”, Seedance 는 “precision”. 모든 걸 최고 품질 도구 하나로 하려 하지 않고, 장면마다 필요한 성질로 도구를 나눴다.

③ 진짜가 필요한 곳엔 진짜를 썼다

배경은 처음엔 Midjourney 가 그린 언덕이었다. 감독이 “actual bliss”를 쓸 수 있냐고 묻자, 1996년 원본 사진의 고해상도 스캔으로 바꾸고 XP 에 들어 있던 파일과 색이 3/255 이내로 맞는지 확인했다. 효과음도 실제 XP 사운드 파일을 썼고, 곡의 키를 XP 시작음·종료음의 키(E-flat)에 맞췄다. 향수는 비슷한 것으로는 안 생긴다는 판단이다.

④ 프롬프트는 한 손으로, 다 쓰고 나서 보냈다

Seedance 1차 프롬프트 36개를 리드 세션이 한 컨텍스트에서 직접 다 쓰고, 다 쓴 다음에 제출했다. 3개짜리 파일럿으로 먼저 검증했다. 이전 작품(CLODYSSEY)에서 에이전트들이 쓴, 아무도 읽지 않은 프롬프트로 1차 라운드를 날린 경험에서 나온 규칙이다. 에이전트 협업에서도 “누가 최종 문장을 쥐고 있나”가 품질을 정한다.

⑤ 실패를 숨기지 않았다

메이킹 문서에는 “What didn’t” 절이 길게 있다.

  • 권한 승인 창 9시간 대기, 그리고 별도로 50분 대기
  • 프로세스 종료와 5시간 사용량 한도 — 실행 중이던 에이전트가 전부 실패했고, 기록에서 재개했다. 감독은 계정을 바꿔 이어 갔다
  • 브라우저 자동화의 취약함 — 창 크기가 바뀌자 Midjourney 클릭 좌표가 어긋났고, Cloudflare 확인은 사람이 체크해야 했다
  • Seedance 가 의상 디테일을 놓친 장면, 모더레이션에 막혀 결국 못 넣은 장면
  • 아트 디렉터 에이전트의 마지막 점수가 기준 8점에 못 미친 6.8~7.5점 이었고, 그 뒤 마무리 패스는 아무도 채점하지 않았다

AI 결과물을 자랑하는 글은 많지만, 이렇게 어디서 멈췄고 무엇이 기준에 못 미쳤는지를 함께 공개한 문서는 드물다. 이 폴더의 진짜 가치는 여기 있다고 본다.

5. 비용 — 토큰 98% 는 “다시 읽기”였다

README 의 비용 절은 Claude Code 기록에서 모든 API 호출의 사용량을 합산했다고 밝힌다.

  • Claude: 22억 5천만 토큰, API 정가 기준 약 $714 (구독으로 실행했으므로 실제 지불액이 아니라 같은 작업을 API 로 했을 때의 비용). v1 마스터까지는 $620
  • 그중 98.1% 가 프롬프트 캐시 재읽기였다. 메인 세션 컨텍스트의 중앙값이 약 47만 토큰이었고, 호출 1,317번마다 그걸 다시 읽었다
  • Seedance 는 정가 $182.14, 모더레이션 차단분 $8.32 환불

긴 에이전트 작업의 비용은 “생성”보다 “기억을 매번 다시 읽는 것”에서 나온다. 이 숫자는 컨텍스트를 얼마나 길게 끌고 갈지 설계할 때 좋은 기준점이다.

6. 우리 홈랩 운영에 비춰 보면

이 문서를 읽으며 가장 공감한 대목은 9시간의 권한 대기였다. 원문의 교훈은 이렇다. “Long unattended runs should keep every write inside paths that are already allowed.” 우리 클러스터의 AI 봇들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로그인 만료로 몇 시간 동안 응답하지 못했는데, 프로세스는 살아 있어서 기존 감시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로그인 만료” 화면 문구를 3분마다 확인해 알리는 감시를 붙였다. 사람이 자는 동안 도는 에이전트에는, 멈췄다는 사실을 알려 줄 장치가 따로 필요하다.

정리

BLISS 는 “AI 가 혼자 영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 사람은 21개의 메시지로 취향을 결정했고, 최종 곡을 직접 골랐다.
  • 에이전트는 리서치부터 렌더까지 제작을 맡았고, 필요한 도구(XP 엔진)를 스스로 만들었다.
  • 생성형 AI 들은 각자 잘하는 칸에 배치됐다. 양은 Midjourney, 정밀함은 Seedance, 곡은 Suno.
  • 그리고 기록이 남았다. 무엇이 됐고, 무엇이 안 됐고, 얼마가 들었는지.

에이전트가 여러 AI 를 지휘하는 시대의 핵심 역량은 프롬프트 기술보다 역할 분담, 결정론이 필요한 곳에 코드 쓰기, 그리고 멈췄을 때 알아채는 장치에 가까워 보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