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공식 발언을 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가 있다. 원팀(One Team)이다. 주주총회 인사말에도, 신임 임원 인터뷰에도, TSMC 심포지엄 기조연설에도, 협력사 행사에도 나온다.

회사 구호로 흘려듣기 쉬운 말이다. 그런데 발언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이 단어가 가리키는 행동이 꽤 구체적이다. 이 글은 SK하이닉스 공식 뉴스룸에 실린 발언만 근거로, 그 안에서 개발자가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습관 다섯 가지를 뽑아 본다.

(반도체 공정과 소프트웨어 개발은 다른 일이다. 여기서 옮겨 오는 건 기술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다.)

배경 — 숫자로 보면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은 제78기 정기주주총회(2026.3.25)에서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97.1조 원, 영업이익 47.2조 원으로 2년 연속 최대 실적을 냈다고 보고했다. 호실적 요인으로는 HBM 매출 증가를 첫손에 꼽았다. 그리고 인사말을 이렇게 맺었다. “원팀(One Team) 정신으로 함께한 구성원과 주주 여러분께 감사하다.”

성과를 말하는 자리에서 기술보다 먼저 꺼낸 단어가 원팀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1. 신입의 의견까지 모아서 합의한다

HBM 경쟁력의 핵심 공정 중 하나가 MR-MUF 다. 고려대 신창환 교수는 SK하이닉스 뉴스룸의 「미래인재 CLASS」 대담(2026.6.8)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MR-MUF 를 어떻게 공정에 적용했느냐”는 질문에 기업문화를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HBM 개발 조직은 업계 전반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SK하이닉스 경영진의 끊임없는 지원과 신입 엔지니어까지 의견을 모아 합의하는 원팀 스피릿 덕분에 기술 난제를 돌파할 수 있었다.”

개발자에게 옮기면: 설계 리뷰와 RFC 에 주니어의 의견이 실제로 들어가는가. “신입은 듣기만 하는” 회의에서는 신입이 본 문제가 영영 회의실에 들어오지 못한다. 현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이상한 걸 본다. 질문이 싸지도록 만드는 일이 여기서 시작된다.

2.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안현 개발총괄 사장(CDO)은 TSMC 2026 기술 심포지엄 기조연설(2026.4.23)에서 메모리와 로직을 통합해야 기술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파트너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모든 파트너가 실시간으로 기술적 진전을 공유하고 복잡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원팀(One-Team)’이 돼, 함께 AI 시대를 열어가자.”

회사 안이 아니라 회사와 회사 사이의 원팀이다. 메모리를 만드는 쪽과 로직을 만드는 쪽이 따로 완성하고 나중에 맞추는 방식으로는 한계를 못 넘는다는 이야기다.

개발자에게 옮기면: 프런트엔드·백엔드·인프라가 각자 완성한 뒤 “통합 주간”에 맞추는 방식은 늘 그 주간에 터진다. 인터페이스부터 일찍 붙이고, 진행 상황을 팀 경계 밖에서도 보이게 둔다. 공개 채널에 쓰고, 드래프트 PR 을 일찍 올리고, 30% 일 때 보여 준다. 완성된 다음에 공유하는 건 보고이고, 진행 중에 공유하는 게 협업이다.

3. 원팀은 전문성의 대체재가 아니라 곱셈이다

Photo기술 김현석 부사장은 2026 신임임원 인터뷰(2026.3.30)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술에 대한 전문성과 조직 간 경계를 허무는 협업 문화가 함께 뒷받침돼야 합니다. 기술적 전문성은 조직의 경쟁력과 자존감의 근원이며, 원팀 스피릿은 그 경쟁력을 성과로 완성하는 힘입니다.”

원팀을 “다 같이 사이좋게”로 오해하기 쉽다. 이 발언은 순서를 분명히 한다. 먼저 각자가 치열한 전문가여야 하고, 원팀은 그 전문성을 성과로 엮는 힘이다. 전문성이 0 이면 아무리 잘 엮어도 0 이다.

개발자에게 옮기면: 협업을 잘하려고 자기 분야의 깊이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다. 다른 팀이 믿고 기댈 만큼 깊어야 경계를 넘을 때 말에 무게가 실린다. “같이 하자”는 말은 자기 몫을 확실히 해내는 사람이 할 때 힘을 갖는다.

4. 주목받지 못할 때 버티게 하는 건 지원이다

1번의 인용에는 앞부분이 있었다. “당시 HBM 개발 조직은 업계 전반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경영진의 끊임없는 지원과…” 원팀은 성과가 났을 때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성과가 안 보이는 시기를 같이 버티는 구조이기도 하다.

개발자에게 옮기면: 테스트 기반 다지기, 관측성, 문서화, 기술 부채 상환처럼 당장 눈에 띄지 않는 일이 있다. 이런 일을 하는 동료를 “요즘 뭐 했어?”로 평가하지 않는 것, 그리고 리더라면 그 일에 시간과 이름을 붙여 주는 것. 나중에 큰 성과를 받쳐 주는 건 대개 그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일이다.

5. 팀의 경계는 회사 밖까지 간다

SK하이닉스는 2026 파트너스데이(2026.9.29)에서 동반성장협의회 25주년을 맞아 협력사와의 ‘원팀’ 결속을 다시 확인했다. 행사 제목부터 “신뢰로 함께 걸어온 25년”이었다.

개발자에게 옮기면: 우리 팀의 경계도 회사 밖까지 이어진다. 우리가 쓰는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벤더가 그 바깥 팀이다. 버그를 찾았으면 우리 코드에서 우회하고 끝내지 말고 업스트림에 재현 가능한 이슈를 남긴다. 고칠 수 있으면 PR 을 보낸다. 나도 하네스로 쓰는 오픈소스 Ouroboros 에서 그렇게 몇 번 PR 을 보내 병합됐다. 신뢰는 그렇게 쌓인다. 25년은 아니어도.

원팀이 구호로 변할 때 — 경계해야 할 것

공정하게 덧붙여 둔다. “원팀”은 잘못 쓰이면 쉽게 이견을 막는 말이 된다. “우리 원팀이잖아”가 “토 달지 마”라는 뜻으로 쓰이는 순간, 1번의 “신입까지 의견을 모아 합의“는 사라진다.

위 발언들을 다시 보면, 원팀의 재료는 의견 수렴, 실시간 공유, 전문성, 장기적 지원, 외부와의 신뢰다. 침묵이나 획일화는 그 목록에 없다. 원팀은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팀이 아니라 다른 말을 해도 같은 결론으로 수렴할 수 있는 팀이다.

나도 이걸 반대 방향으로 겪은 적이 있다. 우리 홈랩의 AI 봇 10개가 “다른 봇이 답하겠지” 하고 다 같이 침묵한 일이다 (에이전트 협업 글). 서로를 믿었지만 소통하지 않았다. 그건 원팀이 아니라 그냥 같은 방에 있는 개인들이었다.

정리

SK하이닉스 발언에서 개발자의 습관으로
신입 엔지니어까지 의견을 모아 합의 설계 리뷰에 주니어 의견을 실제로 반영한다
실시간으로 기술적 진전을 공유 완성 전에 공유한다 (드래프트 PR, 30% 데모)
전문성은 근원, 원팀은 성과로 완성하는 힘 깊이를 포기하지 않는 협업
주목받지 못할 때의 끊임없는 지원 보이지 않는 기반 작업을 평가하고 지켜 준다
협력사와 25년의 신뢰 업스트림에 이슈와 PR 로 돌려준다

References